一茶の俳句は人や動植物など仏教でいう有情のほか、山川や岩などの非情にも感情移入することが多い。同じ傾向が宮澤賢治の詩にも顕著だ。一茶は句に南無阿弥陀仏を挿入したり、西方浄土に思いを馳せるような句を創る。賢治は自ら法華経の行者を名のり、修羅界の巨人のように描き、南無妙法蓮華経と書いてあたかも題目を唱えるようにふるまう。
宗派こそ違え、二人はいずれも仏教的生命観を持っていた。一茶の句を読み込みながら、その基盤に仏教的世界観があることを強く感じる。それは賢治の詩が仏教的宇宙観に通じているのと同じだ。高校時代に水沢で過ごして以来親しんでいる賢治と晩年に出会った一茶の世界が僕のなかでつながった、感動すら覚える。
一茶が自分の老いぼれた姿を重ねた野山に立ち尽くす案山子と賢治が雨ニモマケズに描いた木偶の坊はどこか共通していて、不軽菩薩の化身の姿と言えなくもない。二人とも単に有情非情に感情移入し一体化しているのではない、その表現を通じてそれぞれの抱く仏教的な生命観宇宙観を謳いながら自分を客観しているのだ。
잇사(小林一茶 1763-1828)의 하이쿠는 사람이나 동식물 등 불교에서 말하는 유정(有情) 외에도 산천이나 바위 같은 무정(無情)에도 감정을 이입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경향이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 1896-1933)의 시에도 뚜렷하다. 잇사는 구(句) 속에 남무아미타불을 삽입하거나 서방정토를 표현한다. 겐지는 스스로 법화경의 수행자라 칭하며, 남묘묘법연화경 (나모 사달마 훈다리캬 소타란)이라 쓰기도 한다.
종파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불교적 생명관을 지니고 있었다. 잇사의 구를 깊이 읽으면서 그 기반에 불교적 세계관이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그것은 겐지의 시가 불교적 우주관과 통하는 것과 같다. 고교 시절 미즈사와에서 지내며 친숙해진 겐지와 만년에 만난 잇사의 세계가 내 안에서 연결된다는 감동마저 느낀다.
잇사가 자신의 늙어 쇠약해진 모습을 겹쳐 본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와 겐지가 ‘비에도 지지 않고’에 그린 꼭두각시(木偶の坊)는 어딘가 공통점이 있어, 불경보살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단순히 유정·무정에 감정 이입하여 일체화한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을 통해 각자가 품은 불교적 생명관·우주관을 표현하면서 자신을 객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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