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茶に魅せられて(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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俳句をつくるでもなく、俳句の研究者でもない僕は、晩年になって一茶に引かれるようになった、いわば愛読者の一人である。少し変わっているのは、自ら縦書き文庫版の一茶発句集を作成していることだ。ようやく春の部が完成しつつあるところだが、この作業を通して一茶が教えてくれるものは少なくない。

たとえば、二百年余り隔たった当時の世のなかや事物を見る観察眼であり、独自の切り口である。時代相こそ大きく異なるが、一茶の晩年における観察眼は今日を生きる僕らにも共通する批判精神を提供してくれる。現代人こそ一茶の観察眼を切実に求めているとさえ感じる。

子規(1867-1902)は芭蕉(1644-94)を再評価し、芭蕉の画期性は伝統的な花鳥風月ではなく日常自然の事物を詠んだことにあったとした。それを象徴するのが、「古池やかわず飛びこむ水の音」だという。一茶は芭蕉の画期性を引き継ぎ、さらに徹底したということができよう。小便とか屎(糞)や屁などを題材にした句が目立つのが一茶調の特徴の一つだと思うし、草の庵の屋根や周囲の植物を自分に引き寄せて表現する手法も独特なものだ。これらはみな彼の周りの日常自然なのだ。

芭蕉と一茶(1763-1828)が描く蛙を比較すると、芭蕉の蛙は作者と関係ないところにいて、池に飛び込むだけだが、一茶は痩蛙の側に立ち、真剣に応援している。自分の子のためにも負けてはならない対象なのだ。痩がえるのほかに痩蕨とか、痩せた動植物にまつわる句も多いが、そこに自らの姿を投影している。

こんなところに一茶の魅力を感じるのは僕だけかもしれないが、彼の句は芭蕉ほどには読まれていないように思う。芭蕉の句が侘びさびの粋とされ日本的美意識の表象とされるのに対し、一茶は雀や蛙に寄り添う句に代表される一人の老いた俳人としてしか理解されていない。僕はそのことに大いなる不満を抱いている。さあ、どうしたものだろうか。

하이쿠를 만들지도 않고, 하이쿠 연구자도 아닌 나는 말년이 되어서야 잇싸(一茶 1763-1828)에 끌리게 된, 말하자면 애독자 중 한 명이다. 조금 특이한 것은 스스로 다테가키(세로쓰기) 문고판 잇싸 발구(発句)집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봄편이 완성되어 가는 중인데, 이 작업을 통해 잇싸가 가르쳐 준 것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2백여 년이 지난 당시의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 독자적인 관점이다. 시대상은 크게 변화된 있지만, 잇싸 말년의 관찰력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공통된 비판 정신을 제공해 준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인 현대인일수록 잇싸의 관찰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시키(子規 1867-1902)는 바쇼(芭蕉 1644-94)를 재평가하면서 바쇼의 화기성은 전통적인 화조풍월(花鳥風月)이 아닌 일상적인 자연의 사물을 읊은 것에 있다고 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古池やかわず飛び込む水の音”라는 하이쿠라는 것이다. 잇싸는 바쇼의 화기성을 이어받아 더욱 철저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오줌이나 똥, 방귀 등을 소재로 한 하이쿠가 눈에 띄는 것이 잇싸조(一茶調)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초가집의 지붕이나 주변 식물을 자신에게 끌어당겨 표현하는 기법도 독특하다. 이것들은 모두 그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자연이다.

바쇼와 잇싸가 그린 개구리를 비교해보면, 바쇼의 개구리는 작가와 무관한 곳에 있다가 연못에 뛰어들지만 잇싸는 마른 개구리 곁에 서서 진지하게 응원하고 있다. 자신의 자식을 위해서라도 지지 말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마른 개구리 외에도 마른 고사리 등 마른 동식물에 관한 구절도 많은데,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投影)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잇싸의 매력을 느끼지만, 그의 구는 바쇼만큼 많이 읽히지 않는 것 같다. 바쇼의 구가 와비사비(侘びさび)의 멋으로 일본적 미의식을 표상(表象)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잇싸는 참새와 개구리를 소재로 한 구절로 대표되는 한 명의 늙은 하이쿠 작가로서 인정 받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점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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