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에서 전철로 약 1시간, 오이소(大磯)역 바로 앞에 있는 영빈관(迎賓館)이라는 이탈리아 요리점에서 아내와 둘이서 조금 사치스러운 점심을 먹고, 오이소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조야마(城山) 공원 앞까지 가서 일본(1945-) 초대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의 옛 저택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메이지기념 오이소저택원(邸宅園)에 들르기 위해 걸었다. 저택원 입구에 서 있으니 안내원이 나와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1838-1922)와 무츠 무네미츠(陸奥宗光 1844-1897)의 별장이었던 가옥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쿠마 저택(복원중)에 인접한 곳에 오쿠마 출신인 히젠(肥前) 사가번(佐賀藩) 제11대 번주 나베시마 나오히로(鍋島直大 1846-1921)와 그 후손이 메이지(1868-1911)에 들어 살았다고 한다. 저택 정원 내에 무츠 저택도 있으며, 대일본제국(1868-1945)의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와 관련된 소로우카쿠(滄浪閣, 푸른 파도의 뜻, 사진 참조)도 이 저택에 포함될 예정으로 현재 공사 중이라고 한다.
원래 오다와라(小田原)에 있던 창랑각(滄浪閣)은 1896년 오이소에 건설되었고, 이듬해 이토는 본적을 오이소초로 옮겼다. 1907년 12월 이토 통감(統監)에게 이끌려 10살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온 이은(李垠 1897-1970)은 같은 해 말 오이소에 머물렀다. 창랑각은 1921년 이왕가(李王家)에 양도되어 1946년 나나바시 나라하시(楢橋渡 1902-73), 1951년 세이부(西武)전철 소유가 되어 2007년까지 오이소 프린스 호텔 별관으로 운영되었으며, 1930년 이왕가(李王家)의 도쿄 저택으로 지어진 기오이쵸(紀尾井町)의 서양식 건물은 1945년 이후 세이부전철에 매각되어 옛 아카사카(赤坂) 프린스 호텔로 개업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의 역사 속에서 놀다가 저택을 나와 조금 걷다 보면 도칸미치(統監道 통감길)라는 버스 정류장(아래 사진)이 눈에 띄어 다시 20세기 초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토는 1905년 12월부터 1909년 6월까지 초대 통감이었다.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安重根 1879-1910)에게 암살당한 것은 통감직을 사임한 후였다. 아래는 오이소초 향토자료관 사이트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통감길’은 오이소역에서 선로를 따라 지금의 오이소 중학교 부근에서 남쪽으로 꺾어 국도 1호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현재 오이소 중학교 앞에 버스 정류장 통감길이 있다. 1897년경부터 새로운 도로 건설이 계획되었고, 당시 오이소초 미야시로(宮代謙吉)의원의 운동으로 2,970엔이라는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1907년 8월 16일에 개통되었다. 당일 기념식에서는 80세 이상의 장수 65명과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오이소역에서 이토의 자택인 ‘창랑각(滄浪閣)’까지 통행했다. 밤에는 제등행렬이 진행되었고, 창랑각 문 앞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해산했다고 한다. ‘통감길’의 명칭은 이토의 직함을 따서 개통 당시 미야시로(宮代新太郎) 초장이 지었다. [Translated with DeepL.]

Sir Hirobumi Ito was the First Chief Super-intendent(CS) of the Office of the CS established by the Empire of Japan in Seoul, Korea in 1905.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