なぜ一茶(1763-1828)なのか、なぜ2年余りものあいだ一茶にとり憑かれたように彼の句にルビを振る作業を続けているのか、社会への波及効果も予想できず、何ら報いのないであろうことに没入するのか。自己満足に過ぎないと云ってしまえばそれまでだが、どこかに何か期待するものはないのか。いや、僕に考えられる限り何もないのだ。
왜 잇싸(一茶 1763-1828)인가, 왜 2년 넘게 잇싸에게 사로잡힌 듯 그의 하이구(俳句)에 루비를 붙이는 작업을 계속하는가, 사회에 미칠 파급 효과도 예상할 수 없고, 아무런 보답도 없을 일에 몰두하는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버리면 그 말이 맞지만, 어딘가에 뭔가 기대하는 것은 없는가. 아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 아무것도 없다.
最近気づいたことがある、一茶と僕に共通するものがあるではないか。社会観察ないし周囲との距離感の取り方、それらと密接に関わる孤独感だろうか。一茶は自らの感性にもとづく観察や感情表現を俳句に落とし込めば落とし込むほど、周囲との距離を広げていったのではないか。だとしたら、彼と彼の文章(俳句を箇条書きのぶっきらぼうな文章の連なりとみなすことができる)は孤立感を深め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
최근에 깨달은 게 있다, 잇싸와 나에게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사회 관찰 혹은 주변과의 거리감 유지 방식, 그것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고독감일까. 잇싸는 자신의 감성에 기반한 관찰과 감정 표현을 하이쿠에 담아낼수록 주변과의 거리를 넓혀갔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와 그의 글(하이쿠를 항목별로 나열한 투박한 문장들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은 고립감을 깊게 하지 않을 수 없다.
一茶の俳句をくり返し読み込むにつれ僕自身と周囲との距離感が広がるように思われてならない。その感官の生じる間隔が狭まるほど孤立感が深まるのは当然のことだ。このわかりきったはずのことが時として重苦しく感じられる。
잇싸의 하이쿠를 반복해서 읽을수록 나 자신과 주변과의 거리감이 벌어지는 듯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감각을 느끼는 간격이 좁아질수록 고립감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뻔한 일이 때로는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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