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bwan01

なぜ自伝を書くのか(未定稿)

私が体験した苦難を記録にとどめたいと考えていたが、いざ書いてみると自ら不幸を嘆き、つまらない愚痴を並べるように思われ、やめてしまった。大韓帝國末に王妃に選ばれた名門家の令嬢がひとり悲しい生涯を過ごした——それは恥ずべき運命でしかないのだろうか。子孫として家門を重んじ臣民としてくにを愛するゆえに東方礼儀れいぎの國の模範とされた貞操ていそうを守ったなど、いまや誇るべきものではなくなったのだろうか。

 現代は自己を見失った悲惨な人々があまりに多い。大義のために小人しょうじんが犠牲となり、小人のために大義がないがしろにされるのをみると胸が痛む。小さな誤解や一時的な恋愛のため自死に至る若い人々がいる。苦しかった私の人生の記録を示すことで、彼らに再生の火をともせられたら、そんな思いをうまく伝える自信はないが、この文章をのこすことにした。

 人生は喜悲ひきこもごもの綱渡り。そう達観して自分の体験をすべて運命として受け入れ慰めることもできるが、自ら運命を切り開く勇気を持つべきではないか。世の中にはさまざまな独身者がいる。信仰ゆえに独身を貫く仏教の比丘びく比丘尼びくにやカトリックの神父・修道女だけではない、芸術家や文学者、科学者や社会活動家がいる。恋愛ゆえの独身者も数え切れない。そのいずれにも属さない私は特異な独身者なのだ。

 諫択けんちゃくという美名のもと「人間契約」にしばられて過ごしたうつろな部屋での生活—–五十年の歴史は茨の道そのものだった。障害者や阿呆あほうあるいは恋愛や信仰の聖なる力に包まれた独身生活だったら、もう少し充実した幸せを感じて生きられたかもしれない。

 ちりぢりに引き裂かれた一生。悲しみと孤独に疲れ、涙さえ枯れた人生は自らかえりみても果てしなく哀れでむなしい。歳月は流れ、頭に白髪しらがが混じり、死期も近づいてきた。青春を空しく過ごし、人生のたそがれに差しかかったいま、数え切れないハンが胸をうづめ、言葉にできないほど詰まっている。

 そんな私でさえ生きてきたのに、いまの若者たちはなぜ自分の尊い命を捨て、将棋の駒のように軽々しく捨てるのか。このみすぼらしい人生の愚痴が、成長する若者たちに人生の意義をわずかでも与え、命の価値を感じることになれば、これ以上の喜びはない。

 最後に、この文章を書くよう後押ししてくれた人々に感謝したい。多忙な仕事のかたわら叔母である私の回想録を毎夜心をこめて校閲してくれた姪の詩人・随筆家の炳順ビョンスンを誇りに思い深く感謝している。

1962年10月 金井山クムジョンサンふもとにて ミン甲完カブァン

序詩

国破君亡風雨裡 忠義守節有何人 若無當世閔閨秀 故國江山寂漠春

国破れ君は滅び、暴風雨のなか忠義で節操を守り民族の魂を守った者はいたか。百年のハンが胸に詰まり花が咲かずにち果てようと、あの時代にカブァンがいなかったなら、礼儀の東邦とうほうとされる無窮花ムグンファと山河の故国には光を失った歴史の上に寂しい春が訪れるだろう。

碧雲ビョグン

이 책을 내는 심정

언젠가는 내가 걸어온 한스러운 기록을 담아보겠다는 생각은 가져왔으나 정작 붓을 들자니 꼭 무슨 신세타령만 같아서 그만두곤 했다.

  내 나이 칠순을 바라보는 요즘에 와서야 비로소 붓을 든 것이 보잘것 없는 이 넋두리다.

왕비에까지 간택되었던 소위 명문가의 규수가 외로운 일생을 슬픔 속에서 지냈다는 것은 부끄러운 운명이라 생각된다. 백성 된 도리에 나라를 사랑하고 자손 된 처지에 가문을 중히 여겨 동방예의지국의 표본이기도 한 정절을 지켜 살아온 것이 결코 무슨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에 자기를 잃는 희생이 너무나도 많다는 데 있다. 그것도 대아를 위한 소아의 희생이 아니고 소아를 위한 대아의 희생이어서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한 오해나 사랑의 불장난으로 살생을 밥 먹듯 하고 유행병처럼 스스로의 목숨을 저버리는가 하면, 조그마한 고초를 못 참아 윤락의 구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철없는 꽃송이들이 있기에 나의 이 서럽고도 애절한 생활 기록을 보여주어 굳세게 살아가라는 재생의 등불을 밝혀주려는 데 그 뜻이 있다. 과연 이 나의 본뜻이 그대로 전해지려는지는 의심스럽다.

  인생이란 희비의 줄타기. 어쩌면 이 모두가 하나의 운명이라고 자위도 해보지만 우리는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용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허다한 독신자가 있다. 종교를 위한 독신자로 불교에는 비구, 비구니가 있고 천주교에는 신부, 수녀가 있고 일반 사회에는 예술가, 문학가, 과학자, 사회사업가가 있으며 혹은 사랑을 위한 독신자 등 무수히 많다.

  그러나 나만은 이 모든 범주 안에 들지 않는 기형적인 독신자다.

‘간택(揀擇)’이라는 허울 좋은 ‘인간의 계약’으로 치르고 있는 공방(空房) 생활 오십 년의 역사는 가시밭길 바로 그것이었다. 차라리 병신이었거나 천치 바보거나 아니면, 사랑이나 믿음의 성스러운 힘이 나를 감싸준 독신 생활이라면 좀 더 보람있게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갈기갈기 찢기고 찢긴 한평생, 슬픔과 외로움에 지쳐 눈물마저 말라붙은 생애, 나 자신이 돌아보아도 애처롭기 그지없으며 허무하기 짝이 없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내 머리에 백발이 성성하니 이젠 마지막 갈 길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청춘을 공로(空老)하고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고 보니, 오만가지 한이 가슴을 메워 말문이 벙어리처럼 꽉 막힌다.

이러한 나도 살아왔거늘 요사이 젊은이들은 왜 자기의 귀한 생명을 헌신짝 내던지듯 그리 헤프게 버리는지 의문이다. 나의 이 보잘 것없는 인생의 넋두리가 뻗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보람을 좀더 줄 수 있고, 생명의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한없이 기쁘겠다.

  끝으로 이 글을 쓰도록 격려해주신 여러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직무에 시달리는 바쁜 몸을 갖고도 이 고모의 수기를 밤마다 정성들여 정리해준, 시인이며 수필가인 내 조카 병순(丙順)을 고맙게 여기며 자랑하고 싶다.

1962년 10월 금정 산하에서 민갑완

서시

國破君亡風雨裡(국파군망풍우리)
忠義守節有何人(충의수절유하인)
若無當世閔閨秀(약무당세민규수)
故國江山寂寞春(고국강산적막춘)
나라는 깨지고 임금은 쇠망하여
비바람 몰아치는 폭풍우 그 속에서
충으로 항거하고 의로써 절을 지켜
민족혼 보전한 이 그 누가 있었던고
‘백년한’ 가슴 맺혀 못피고 시들망정
만약에 그 당세에 민 규수 없었던들
예의동방 이름 높은 무궁화 이 강산은
빛 잃은 역사 위에 적막한 봄이리라

-벽운(碧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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