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닌

以下の韓国語は縦書き文庫に載せている「この世でもあの世でもなく」(日本語 未完)冒頭部分の仮訳です(Translated with DeepL)。

물고기들은 강의 흐름을 거스르고, 등산객들은 바위를 오르며 길을 걸어서 위로 올라간다. 자유롭게 헤엄치고 자유자재로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제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그곳에 어딘가에서 오는 새로운 생명,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저 세상—–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세상을 믿는다. 그것은 무종교파(無宗教派)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미신 중 하나가 아닐까. 아니, 무종교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나 사찰, 신사나 자연을 의지하는 사람들도 같은 미신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옛날, 아직 집집마다 TV도 전화도 없던 시절, 겨울이 되면 도쿄에도 몇 차례 눈이 쌓인 적이 있었다. 늘 보던 풍경이 눈으로 뒤덮인 것을 보고 아이들은 기뻐하며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워했다. 효야(凭也)도 숯가마니 짚으로 썰매를 만들어 밭 비탈길과 도로를 활강했다. 짚에 묻은 숯가루로 까맣게 변한 놀이 친구들의 얼굴, 얼굴, 얼굴… 모두의 얼굴이 한꺼번에 함박 웃음을 짓는다.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미나몯토요리토모(源頼朝 1147-1199)와 인연이 있는 하치만구(八幡宮)가 있다. 눈 덮인 경내(境内)에서 소년들은 나를 잊고 검은 개 한 마리와 함께 뒹굴며 놀고 있었다. 흑백사진 같은 그 광경이 효야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항상 함께 놀던 친구는 그때는 없었다. 그 검은색 개는 고마개(狛犬)의 화신(化身)이 아니었을까.

그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눈이 내리면 무채색의 풍경 속에 멀리 그 검은 개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는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하치만구 본전 앞, 좌우 양옆에 웅크리고 있는 한 쌍의 고마개 석상 중 어느 한 쪽을 닮은 개였다. 어쩌면 그 자신이 고마개가 되어 눈과 장난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무언가에 몰두하면 다른 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동료들이 사라져 있거나,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대여섯 명과 함께 뒷마당에 구멍을 판 적이 있다. 내 키 높이만큼 깊어지고 점토층이 드러나면 물이 솟아나왔다. 아무리 퍼 올려도 멈추지 않았다. 그걸 보고 갑자기 겁이 나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업을 중단했다. 항상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어느 선을 넘으면 멀어지는 그런 곳이 있었다. 그런 부분이 있었다.

효야라는 이름 때문에 독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일본어를 사용했고, 다른 말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없다. 도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신고는 효야라는 한국어로 할 수 없었다.

그의 외할머니는 윤하, 외할머니는 희사라는 이름으로 호적상으로는 각각 유나, 히사라고 한다. 모두 서울 근교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다. 효야는 조부모님들까지 합치면 3대째 재일교포 3세가 된다. 호적에는 ヒョォヤ[효오야]라는 가타카나로 표기했다. 동세대에서는 흔치 않은 이름이고, 어릴 때부터 자신도 가족도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꼈다. 그런 이방인 의식을 결정적으로 만든 것은 그의 어머니 반자의 신앙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다른 여러 속성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출신마저도 가려버렸다고 할 수 있다.

原文の日本語は以下のとおりです。

うをは流れにあらがい登山者は岩を登り道を歩く。自由に泳ぎ自在に歩いているように見えても、みな制約のなかで生きている。そして、人々の住むこの世とそこにどこかからやって来る新たな生命、人々の想像のなかにあるあの世—–いつの時代も人々はこれら二つないし三つの世を信じている。それは無宗教派の人々のあいだに広く普及している迷信の一つではないか。いや、無宗教派に限らない。教会や寺院、神社や自然をりどころとする人々も同じ迷信を前提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

いまはむかし、まだ家々にテレビも電話もなかったころ、冬になると東京にも何度か雪が積もった。いつもの景色けしきが雪におおわれたのを見て子どもたちは喜び、はしゃいで雪だるまを作り雪合戦がっせんをした。효야ヒョーヤ炭俵すみだわらわらをそりに仕立したて、原っぱの斜面や道路ですべった。藁についたすみの粉で黒くなった遊び仲間の顔、顔、顔—–みんなの顔が一斉いっせいにどっと笑う。

坂道を登りつめて少しくと源頼朝みなもとよりともゆかりの八幡宮はちまんぐうがあった。すっぽり雪をかぶった境内けいだいで少年たちはわれを忘れて一匹の黒犬とたわむころがり回った。モノクロ写真のようなその光景こうけい효야ヒョーヤ脳裏のうりに焼き付いている。いつも一緒に遊ぶ仲間はそのときいなかった。あの黒犬は狛犬こまいぬ化身けしんではなかったか。その後一度も会っていないが、雪が降ると、無彩色の光景のなかに遠くその黒犬が激しく尻尾しっぽを振っているのが浮かぶことがある。八幡宮の本殿の手前、左右両側にうずくまるる一対の狛犬の石像のどちらかとそっくりの犬だった。彼自身が狛犬で雪とたわむれ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

彼は少年のころから何かに夢中になると、ほかのことが見えなくなった。気づくと仲間がいなくなっていたり、怪訝けげんな表情で彼を見ていることがあった。五六人で裏庭に穴を掘ったことがある。身長ぐらいの深さになって粘土層があらわになると水がいてきた。んでもくんでも止まらない。それを見て急にこわくなり、みなの反対を押し切って作業を止めてしまった。いつもみなと交わっていたいのに、ある一線を越えると引いてしまう。そんなところがあった。

효야ヒョーヤという名前からして、読者は変に思うだろうが、日本に生まれ、幼いころから日本語を話し、ほかの言葉は知らない。見ただけでは、ほかの子どもと違うところはない。生まれたのは東京だから、出生届は효야という韓国語では受け付けられない。彼の母方の祖母は윤화ユヌァといい、父方の祖母は희사フィサという名で、それぞれ戸籍上はユナ、ヒサという。みな서울ソウル近郊にルーツを持つ人たちだ。효야は祖父母たちから数えて三代目で在日三世になる。戸籍にはヒョーヤというカタカナで届けた。同世代にはめずらしい名前だし、幼いころから自分も家族もどこかほかの人々とは違うと感じていた。そんなよそ者意識を決定的にしたのが彼の母バンジャの信仰だった。というより、それが他のさまざまな属性を見えなくしたというべきだろう。それは彼自身の出自をもおおかくしてしまった。